실은 지난 번에 올린 샘플도 퇴고 과정에서 변경되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완성되기 전에 책의 내용을 그대로 따서 공개하는 것은 조금 피하고 싶어졌습니다. 게다가 파편적인 소개로는 분위기를 전달할 수 없다는 의견도 있어서, 이번에는 실피에나의 역사에 대해 간단한 요약을 하고, 다른 얘기도 몇 가지만 하겠습니다.
역사
건국된 지 700년이 조금 넘은, “제국”이라 불리는 거대한 나라가 있습니다. 실피에나는 원래 독립된 왕국이었다가 제국이 건국되었을 때 자발적으로 합류하여 하나의 백작령이 되었습니다. “백작령”이라고는 하나 사실은 독립국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제국은 통일된 중앙집권국가가 아니라, 지도부가 세습되는 매우 강력한 UN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면 이해가 빠를 것입니다. 실피에나 사람들도 백작령은 “우리나라”라고, 제국 내의 다른 영지는 “외국”이라고 부릅니다.
제국력 500년경, 제국 정세에는 큰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서해안의 영지인 팔레나 자작령의 갑작스러운 세력 확장을 경계한 제국 황실은 군대를 파견하여 기세를 눌러 놓으려 했지만, 제국군의 정예는 팔레나와 그 이웃 다말의 연합군을 상대로 대패를 겪었습니다. 황실의 체면은 실추되었고, 자작은 더 이상 책임을 추궁하지 않는 조건으로 몇 가지를 얻어냈습니다. 그 중 하나가 실피에나에 대한 실질적 지배권입니다.
팔레나트(팔레나의 수도인 거대무역도시)가 원했던 것은 실피에나에서 당시 발견되기 시작한 막대한 양의 “오로라이트”였습니다. 이 광물은 신형 마법 체계인 “제2형 마법” 또는 “산업마법”의 연구와 실현에 필수적인 재료였습니다. 실피에나 백작령에는 오로라이트의 개발과 구입을 허락하라는 팔레나트의 압력이 밀어닥쳤고, 황실에서는 이 압력으로부터 실피에나를 보호해주지 않았습니다. 실피에나 정부 내에서도 개방과 쇄국을 놓고 다툼이 벌어진 끝에, 수석기사를 필두로 한 쇄국파의 쿠데타에 의해 개방을 원하던 백작이 피살되는 흉사가 벌어졌습니다. 그 뒤에 각 지방의 관리와 장군들이 꼬리를 물고 거병했습니다.
팔레나트에서는 이것을 기회로 삼았습니다. 실피에나에 통일된 정부가 서서 오로라이트의 채굴을 방해하지 못하도록, 현지에 “용병길드”라는 기관을 설립하고 이를 통해 실피에나 각지 군벌들의 다툼을 지원하고 조장했습니다. 이것이 내전시대의 시작입니다. 그 후로 약 200년간, 실피에나는 우스울 정도로 작은 영지를 가진 자칭 남작들의 각축장이 되었습니다. 남작들은 헐값에 오로라이트를 팔레나트에 팔았고, 어느 남작인가가 너무 세력이 커지면 용병길드가 다른 남작들을 도와 이를 찍어 눌렀습니다.
2년 전, 우르고로스 화산이 대분화를 일으켰습니다. 어찌된 일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오로라이트의 발굴장이던 “유적”들에서도 비슷한 폭발과 지각변동이 일어나 실피에나의 오로라이트 산출은 마비되었습니다. 화산폭발에 잇따른 흉작과 추위, 직접적 인명과 재산 피해 등등에 의해 안 그래도 미미하던 남작들의 통제력은 소실되었고, 더 이상 상황을 통제할 수 없게 된 용병길드도 재빠르게 실피에나에서 철수했습니다.
백작과 사령관
백작가의 후손인 루피나 실피엔은 팔레나트에서 유학하는 동안 실피에나에 대한 팔레나트의 분열 정책을 비판해왔습니다. 통일된 정부의 수립을 지원하는 것이 인도적이며, 실피에나가 강력한 우방으로 성장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팔레나트에도 이익이 된다는 것이 루피나의 주장이었습니다. 화산 폭발로 인해 생긴 피해와 혼란을 수습할 중앙정부가 없어 오로라이트의 산출이 완전히 끊기자, 팔레나의 자작은 루피나를 지원하여 실피에나의 새 백작으로 옹립하기로 마음 먹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루피나는 현재 실피에나 서부 2개 지방의 지배자가 되었고, 황실로부터 인정을 받지는 못했으나 스스로 백작이라 칭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비슷한 시기, 실피에나 북동쪽 구석에서 나무꾼으로 생활하던 청년 에르네스가 숲에서 나와 화산 폭발 후 어찌할 줄 모르는 농민들을 규합하여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습니다. 귀족과 기사들을 상대로 승승장구하던 “혁명군”은 결국은 실피에나 북동부를 지난 이십여 년간 실질적으로 지배하던 강호 무라드 파라고스를 격파하고 그 본성을 손에 넣었습니다. 에르네스는 “혁명정부”의 수반으로서 실피에나 동부의 두 지방을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팔레나트를 배후에 둔 새 백작 루피나를 견제하려는 황실의 지원이 이루어졌습니다.
올해 초 이 두 세력 사이의 첫 격돌인 “운하전쟁”이 벌어졌으나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캠페인의 기본 시작 시점은 휴전협정 후 2개월 뒤입니다.
그럼 실피에나는 이 두 세력이 싸우는 얘긴가?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비록 이렇게 써 놓기는 했지만, 이것은 그냥 “시대상황”일 뿐입니다. PC들도 원하면 백작이나 사령관의 어느 편을 들 수 있지만, 책이 그것을 전제로 구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심지어 백작이나 사령관은 실피에나의 미래를 결정하는 주체조차 아닙니다(팀에서 그렇게 플레이하고 싶으면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지만요).
GURPS 실피에나는 가지를 치고 줄기도 좀 깎아서 말하면 PC들의 미래, 나아가서 실피에나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한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책이 나오기 전에 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GURPS 국문1판 기본세트의 팔레나트와의 관계는?
이론상으로는 같은 세계의 다른 지역이지만, 기본적인 세계 설정은 상당히 많이 바뀌었습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어 팔레나트가 나오면 그 역시 실피에나에 나온 설정을 따를 것입니다.
작업 진척 상황
작업은 대체로 순조롭지만, 대선 때의 인쇄 물량 폭증으로 인해 실제 출간은 내년으로 미루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됩니다. 책의 형식은 기존의 GURPS 책들과는 좀 다르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일단 표지를 빼면 컬러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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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루 늦었지만 독자 여러분 모두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혹시나 겁스 말고도 D&D는 출간계획이 없으신지요?
커뮤니케이션 그룹판 클래식 D&D는 거의 레어템이 되어버렸네요
기회가 되고 사정이 되면 가능하겠지만... 당장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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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감사합니다. 아직도 갈 길이 멀지요 ^^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